2016/06/26 17:20
지나친 칭찬이나 지나친 비난은 신경 쓰지 않는 게 좋다. 나에 대한 말이 아니라, 제 컴플렉스나 심리적 억압을 나라는 대상에게 투사投射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2016/06/26 17:20 2016/06/26 17:20
2016/06/25 10:07
부자 노인들만 찬성한 게 아니라 가난한 청년들도 찬성했다. 주류 좌우, 즉 노동당과 보수당은 반대했지만 극좌와 극우는 찬성했다. 결국 브렉시트 투표는 세대로 나뉜 것도 이념으로 나뉜 것도 아닌, 기성의 좌우 질서와 그에 대한 극단적 불신의 구도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변혁적 급진성의 맥락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유례없는 혼미야말로 오늘 세계의 상태와 대중의 정서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2016/06/25 10:07 2016/06/25 10:07
2016/06/23 11:34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에 대해 되도록 침묵하는 게 낫다.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 이전에, 나 자신을 우습게 만드는 일이기 쉬우니.
2016/06/23 11:34 2016/06/23 11:34
2016/06/23 11:18
병장이 되고 얼마 안 되어 스무살부터 6년 사귀었던 여자와 헤어졌다. 그는 내가 제대 직전 결혼했다. 그는 나와 함께 다녔던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성가대 청년들이 보이콧했던 모양이다. 군대에서 고생하는 애인을 배신한 나쁜 년, 이라는 이유였다. 결혼 소식은 들었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몰랐다. 다음 해, 서울영상집단에서 한참 정신머리없이 활동할 무렵 그에게 연락했다. 교대를 졸업한 그는 영등포 어느 초등학교에서 일했다. 학교 부근 찻집에 나온 그는 배가 꽤 불러 있었다. 얼마간의 안부를 교환한 후 내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어요. 불편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편히 지냈으면 좋겠어요." 안 쓰던 존댓말이 나왔다. 그의 눈에 눈물이 비치는 듯했고, 나는 목례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꽤 걸었는데 나도 눈물이 조금 났었는지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몇달이 더 지나, 나는 친구로부터 그가 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새로운 남자와 많이 진척된 상황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가대를 보이콧한 청년들이 사실관계를 오해한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이게 소급하여 화가 날 일인지 아닌지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고민에 빠졌고, 결국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나를 걱정하고 옹호한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사랑(혹은 그의 사랑)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들은 '나쁜 년 이야기'를 재료로 자신들의 윤리 의식을 표현했을 뿐이다. 사랑은 그들과 무관하게 있었고, 끝났다. 그 일을 통해 나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사랑에 대해 언제나, 적어도 사랑이 아닌 것으로 말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은 외로운 일이라는 것도.
2016/06/23 11:18 2016/06/23 11:18
2016/06/22 08:32
그놈의 6월이라서일까. 부쩍 민주화가 개인주의라도 제대로 정착시켰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개인주의는 말라붙고 부활한 집단주의와 이기주의만 좌우를 넘나든다. 개인주의의 출발점은 존중이다. 존중은 타인을 그 존재와 생김 자체로 인정하는 일이다. 존중이 없는 사회엔 존경과 무시의 이분법만 그득하다. 개인주의는 백명에게 백개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믿음이다. 삶의 방식에 우열은 없다는 믿음이다.
2016/06/22 08:32 2016/06/22 0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