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춘 박은옥 류연복 임의진 들과 양평 김두수 형 집에 놀러갔다. 밤새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술마셨는데, 예정에 없던 전문체육인과 비급좌파의 심야 달리기 시합(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도 있었다. 새벽녘에 거개가 잠들고 두수 형, 의진과 셋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수 형이 예수전을 읽으며 내가 자신과 비슷한 데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들켰네요. 제가 눈곱만큼도 회의하지 않는 이상주의자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만큼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도 없을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은 자기 파괴적인 동물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비관이 오히려 저로 하여금 타협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혹은 제 당대에 무슨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나 집착이 없으니까, 사회를 길게 보면서 가장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거죠. 비관적이지 않았으면 아마 훨씬 더 현실적인 노선을 선택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결국 저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을 거예요. 그런 노선은 실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나를 위로하려는 수작이거든요.” 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야기는 김두수라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온화한 인간에 대한 관찰이기도 하다. 그의 온화함 역시 인간에 대한 철저한 비관에서 나온다. 그의 눈엔 모든 사람이 가엽기만 한 것이다. 전적이진 않지만, 삶이란 참 역설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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